top of page
바닥을 굴러다니는 종이들을 전부 모아 쓰레기통에 넣었다. 괜히 타자기의 상태를 점검했고, 원고지가 얼마나 남았는지, 연필과 지우개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했다. 몸의 구석구석이 피곤하다고 불평했지만 들어주기 싫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떨리는 손끝과 메슥거리는 속을 깡그리 무시하고 몸을 움직여 집 안을 전부 정리했다. 분리수거에 일반 쓰레기 정리까지 완벽하게 해냈다. 그러고 나서야 완전히 녹초가 된 제 몸을 어딘가의 바닥에 대충 굴려놓고 그제야쏟아지는 잠을 받아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시각을 잃었다.
겨우 일어났을 때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깜빡거리는 휴대폰의 붉은 불빛이 거슬려 알림만 정리하고 멀리 치워버렸다. 터져 나오는잔기침과 함께 몰려온 미칠듯한 공복에 냉장고에 남은 레토르트 음식을 데워 입안에 밀어 넣었지만, 위장만 채워질 뿐, 먹는 즐거움을 박탈당했다.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음이 이상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후각과 미각을 잃은 듯했다. 어쩔 수 없지. 수저를 움직이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을 잃어도 공허했다. 이상하네, 이럴 이유가 없는데. 비어버린 접시 위를 한참 동안 내려다봤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