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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잃으니 자연스럽게 말을 잃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잊는 대신 당신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되뇌며 닫혀있는 현관문을 바라봤다.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에 황급히 문을 열면 놀란 표정의 타인이 서 있을 뿐, 하염없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린 당신만 서 있지 않았다. 이번 마감은 왜 이렇게 늦어요.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담당자는 화를 내기보다는 타이르기 시작했다. 상담해주겠다는 말에 고개를 저어버리고 죄송하다는 말만 차가운 공기 사이에 녹여냈다. 아무 일도 없었으니 상담할 이야기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일을 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닫혀버린 현관문을 뒤로하고 냉장고를 열어 에너지 드링크를 집어 들었다. 방문을 닫아버렸다.
잠과 밥을 거르고 일에 자신을 파묻어버렸다. 겨우 맞춘 마감날에 건넨 원고를 현관에 서서 급히 확인하고 달려가는 편집자님의 갈색빛 목도리가 흩날리는 눈발에 파묻혀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현관문을 닫아버렸다. 대충 내디딘 걸음 끝에 아무 의자나 붙잡고 몸을 앉혔다. 어딘가에 부딪힌 것 같았지만 아무런 느낌도 남지 않았다. 촉각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입을 조금 벌려 한숨을 내쉬니 혀끝에서 에너지 드링크의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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