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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 서 있는 남자의 머리 위에서 하얀 눈이 온 힘을 다해 흩뿌려지고 있었다. 현관문이 거세게 닫혔다. 냉랭한 방 안은 산소가 턱없이 부족했고 남자의 뇌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 시간을 들여 최대한 쥐어 짜낸 머리가 처음으로 산출한 결론은 발을 뒤집어 도망가는 것이었다. 당신의 눈에서 흐르던 액체와 높아진 목소리에서 시선을 돌려버렸다. 우리는 아마 헤어진 모양이었다. 헤어지고 싶다면 보내줘야지. 목구멍에 쑤셔 넣고 겨우 삼켜버린 문장에서 독한 맛이 났다. 원래부터 부족했던 현실감각이 더욱 메말라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발가락끝이 향하는 곳이 왼쪽인지 오른쪽인지도 희미해졌지만, 뇌 깊은 곳에 남아있는 집의 구조 덕분에 생각보다 금방 자신의 방을 찾았다. 자신 외엔 누구도 없는 집 안을 얼마나 헤매고 다녔는지에 대한 자각은 남아 있지 않았다.

  일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곁에서 전기난로가 돌아가는 소리를 온종일 음미했다. 깜빡거리는 눈의 묵직한 소리를 곱씹었고, 심장이 뛰는 소리를 손가락으로 꼽았다. 무엇도 꼽을 수 없다는 사실에 이상함을 느껴 시간이 흐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심야가 지나고 달이 기울어지도록 잃어버린 감각은 돌아오지 않았다. 겨우 떠오른 어느 노래의 선율을 더듬더듬 읊었지만, 무엇도 들리지 않았다. 비어버린 공간은 소리를 잃었다.

琉의 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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