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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기도 그럭저럭 잘 마쳤고, 일도 그럭저럭 잘 해냈다. 로건은 완전히 집에 적응했고, 길들었다. 여전히 편집자님은 무서운 모양이지만. 문제가 될 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편집자님에게선 한숨이 떠나가질 않았다. 눈치채지 못한 척 버티다가 결국 강제 휴가를 얻었고, 얌전히 집에서 쉬고 있을 예정도 깨져버렸다. 분명히 MT에 참석할 당신을 피하고 싶은 마음 반, 당신을 다시 보고 싶다는 마음 반이 끝없이 서로를 잡아먹어 댔다. 어느 쪽이 이기든 한심했다. 결국, 결론을 내려준 것은 로건이였다.

  자신의 이름 세 글자에 보이는 반응이 마음 아팠다. 품 안에서 로건이 꼬물거리는 것에 신경을 집중해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반응했지만, 당신은 그게 탐탁지 않은 듯했다. 당신은 내가 미운 거였구나. 눈앞에 있으면 상처의 딱지를 긁어내는 것이나 다름없을 테니 떠나주려 했는데, 오히려 먼저 잡은 쪽은 당신이었다. 그 손길에 억지로 눌러 죽여놨던 미련이 고개를 들었다. 떨어지는 손길을 붙잡았고, 숨겨놔야 했던 말을 전부 해버렸다. 당신을 안아버렸고, 어리광을 듣고, 어리광을 부려버렸다. 좋아한다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몇 번이나 참았다. 당신을 놓아주고 싶지 않다는 충동을, 닿으면 닿을수록 비참해지는 감정의 크기를 전부 고스란히 느꼈지만 행복했다.

  허탈했다. 열심히 죽였던 감정들이 당신의 앞에서는 새싹이라도 되는 양 무럭무럭 자라났다. 뻔뻔하기도 하지. 이렇게나 열심히 밟아댔는데, 알고 보니 더욱 단단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준 꼴이 되어버렸다. 믿을 수 없다고 스스로 타박을 줬지만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琉의 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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