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최악이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글자 하나하나가 전부 상처로 남았다. 잠시 읽었을 뿐인데 몰입되어 어느 순간부턴가 울고 있었다. 자꾸 글자가 흐려져 도저히 읽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야 책을 덮어버렸다. 다시는 손을 대지 않겠다고 굳게 닫힌 표지 앞에서 몇 번이나 다짐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자꾸 손이 갔다. 뻗은 손끝에 닿았기에 다짐을 배신하고, 다시 읽기 시작했고, 울어버리는 일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마지막 문장을 읽은 것은 책을 사고 꽤 많은 계절이 지난 뒤였다. 그다음 날, 아이는 학교 근처의 문구점에 가 편지지를 샀다. 어린 나이여도 어머니에게 확실히 교육받아 몸에 베여버린 깔끔한 글씨체를 볼펜으로 꾹꾹 눌러 베이지색 종이를 채웠다. 잘못 쓴 글자가 나올 때마다 새 종이를 꺼내 다시 몇 번이나 썼다. 겨우 완성한 편지에는 아이의 숨결이 짙게 뱄다.

 

  버리지 못한 잔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넘겨봤다. 그리 잘 쓴 글은 아니었다. 되려 감정이 이곳저곳 묻어 있어 부끄러운 글이었다.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다시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月寒江淸 : 달빛은 차고 강물은 맑고 조용히 흐른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