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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았던 눈을 떠 손을 뻗어 더듬었다. 가방 안에 멋대로 들어간 손은 조금 두꺼운 종이 몇 개를 집어내었다. 베이지색의 깔끔한 편지지 몇 장. 자신을 한없이 갉아내는 글이었지만, 되려 오기로 살아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한 책의 작가에게 쓴 것이었다. 덕분에 바닥이 보이지 않는 바닥에서 악착같이 숨을 내어 쉬었고, 심장이 멈추지 않도록 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일 수 있었다.

 

  자신을 이렇게까지 변하도록 만들었지만, 발단은 여느 유치한 소설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인 ‘우연히’였다. 대충 8년 전이었을까, 문제집을 사러 들렀던 서점에서 충동적으로 문제집 대신 책을 골라 나왔다. 왜 그랬지, 지금도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하여튼 손에 들려 있었다. 돈을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하고 또 맞았다. ‘네 어머니는 덜렁대지 않았단다’와 비슷한, 자신만의 망상에 집착하는 말은 굳이 귀에 담아두지 않았다. 잘못했다고 사정하면 남자는 만족해했다. 그 뒤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 동안 틈틈이 그 책을 펴 읽었다.

月寒江淸 : 달빛은 차고 강물은 맑고 조용히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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