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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웃긴 점은, 그 이후로도 아이는 동경하던 TV 속 히어로가 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피가 가진 온기를 몇 번이나 경험했고, 사람이 죽을 때의 모습은 망막에 깊게 새겨졌다. 고막에는 어머니를 닮은 여자들의 비명과 살려달라는 외침이 울려 퍼져 괴로웠다. 아이의 신세도 별다를 바는 없었다. 식탁 위에 올라오는 그들의 유산-고기-를 거부할 때마다 어김없이 반쯤 죽은 상태가 되어버렸다. 다만, 얼굴만은 건드리지 않았다.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자와 가장 비슷한 것이니 건드릴 수가 없었겠지. 숨만 붙은 상태에서도 아이는 그를 비웃었다.

 

  해가 지날수록 는 것은 잔꾀뿐이었다. 자신은 그 남자와 다를 바가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원망할 수 없었다. 아이의 검은 두 눈에는 다른 무엇보다 붉은 혈액이 익숙했다. 아이는 나이가 손가락 10개를 넘기기 전부터 자신을 어떻게 지키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부정하기보다는 납득하는 편이 편했고, 저항하기보다는 순응하는 척 회피하는 것이 편했다. 보편적인 도덕관을 내세우며 딱딱하게 굴면 당장에라도 목숨이 날아가는 것이 뻔했다. 사람은 생각보다 영리했고,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빨랐다. 그런 제 모습이 너무도 웃겼다.

 

  원하는 대로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냈다. 단 한 번도 언성을 높이지 않았고, 그의 눈을 마주 보지 않았다. 그렇게 평생을 견디면 어떻게든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은 아이를 비웃었다. 날카로운 웃음소리에 귀가 아팠다.

月寒江淸 : 달빛은 차고 강물은 맑고 조용히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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