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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는 아버지의 허벅다리가 가진 무게를 알았다. 자신을 곧잘 들었던 어머니의 팔이 얼마나 얇은지도 알았다. 매일같이 울어대던 여동생의 눈을 감은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시간을 들여 느긋이 볼 기회가 되었다. 하나같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기에 되려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나쁜 꿈이기를 바랐다. 울며 깨어나면 여느 때처럼 어머니가 저를 안아주고, 아버지가 노래를 불러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더는 그들의 감은 눈은 뜨이지 않았다. 피 웅덩이의 구석에 혼자 숨어 비겁하게 살아남은 아이는 구원받을 수 없었다. 대신, 질투에 미쳐버린 남자의 손이 태연한 척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온갖 가식을 눈에 담았다. 우습기 짝이 없어 부모님의 장례식인데도 눈물을 흘릴 수가 없었다. 어린 나이에 미쳐버린 게 분명하다는 소문이 싫었어도 그 작은 어깨로 죄다 짊어져야 했다. 차라리 미쳐버렸다면 편할 테지만, 애석하게도 맨정신이었다. 가족의 웃는 얼굴이 새겨진 영정사진을 마주할 수 없었다. TV 속에 나오는 히어로나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만 한 용기가 없는 자신의 모습이,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이제는 먼 세계의 이야기 같은 행복한 시절의 이야기가 심장을 짓누르다 못해 부숴버릴 것 같았다.

月寒江淸 : 달빛은 차고 강물은 맑고 조용히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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